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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로 오빠

전송실패 2023. 2. 5. 00:45

첼로 오빠의 어머니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내 머릿속에 떠오른 이미지는 거실 한가운데에서 목을 매단 모습이었다.
약간 말랐고 흰 피부에 윤기가 어느 정도 남아있는 검은 중단발 머리를 늘어트린 여성의 모습.
첼로 오빠가 키가 크고 피부가 희고 말랐고 머리가 새까매서 첼로 오빠가 여성화된 모습이 떠오른 것 같다.
초딩과 고딩이라는 갭은 크긴 했지만 어쨌든 잠시 같이 지내기도 했던 또래의 부모님의 부고 소식 자체도 당시엔 겪기 어려운 일이었고, 거기다 사유가 자살이라는 것도 충격적이기 그지 없었다.
어릴때의 기억이라 현실과 상상을 혼동하는 걸 수도 있는데, 첼로 오빠의 아빠도 키가 엄청 큰 대신 머리가 희끗했고 반곱슬에 약간의 풍채도 좀 있으셨다. 첼로 오빠의 형도 키가 커서 셋이 서있으니 메타세콰이어 세 그루를 앞에 둔 것 같았다. 어머니는 안 오셨다.
첼로 오빠는 흔한 고딩 텐션이었는데 가족들이랑 있으니까 급격히 말 수가 없어졌다.

첼로 오빠는 첼로를 해서 첼로 오빠다. 집안이 다 악기를 한다고 했다. 형은 목관악기였던 거 같고 아버지는 기억이 안난다. 어머니에 대한 언급은 들은 적 없다.
첼로 오빠가 한번씩 첼로 켜는 걸 보여준 적 있는데 매번 대충 몇번 활로 문대고 ‘자, 됐냐? 이제 나가‘ 이런 느낌이어서 제대로 연주하는 걸 본 적은 없다.
그냥 초중딩들이랑 마을 폐가가 빈 집에서 귀신 사진 찍으러 다녔을 때 더 적극적이었던 것 같다.

피부가 희어서 턱에 수염이 삐쭉삐쭉 듬성듬성 나있는게 잘 보였다. 얼굴은 기억이 안나는데 그 턱이 기억난다. 키가 커서 내 시야는 대부분 오빠의 턱에서 그쳤다.
전체 모습이 기억나는 건 우리가 폐가에서 찍은 사진을 노트북에서 옮기는 뒷모습이다. 우리 눈에 귀신이나 요정처럼 보이는 것들이 사진에 찍혀있었고, 사진을 찍은 디카와 사진을 옮겨담은 노트북이 꺼지지도 않고 사진이 넘어가지도 않는 채로 멈췄다. 첼로 오빠는 기겁하며 노트북 뚜껑을 덮어버렸다. 나중에 노트북이 작동될 때 지워버렸다고 해서 내가 많이 아쉬워했다.

첼로 오빠가 살던 곳으로 돌아간 후 한 번도 본 적도, 소식을 들은 적도 없었다. 나는 키가 컸고 짜증은 내도 나를 포함한 초딩들 잘 상대해주던 오빠를 좋아했다. 그래서 가끔 뭐 하고 사시는지, 의대였나 음대였나 지망하던 대학은 잘 갔는지 궁금했고, 내가 너무 까불어서 막판에 좀 정 떨어진 거 같던데 실수를 반추해보기도 하고 그랬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흐른 뒤 내가 첼로 오빠의 나이가 되었을 때 어머니 소식을 들은 것이다.
지금은 첼로 오빠를 먼저 떠올리는지 거실에 목 매단 오빠의 어머니가 먼저 떠오르는 건지도 알 수 없게 되었다.

낮, 작사광선이 들어오지 않는 밝은 거실, 거실 등에 매달린 줄과 어머니의 후측, 거실에 들어서고 그 장면을 마주하는 첼로 오빠의 모습.

직접적으로 자살 방법에 대한 얘기를 들었던거 같기도 하지만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울증이 있으셨다면 수면제 같은 덜 복잡한 방법이 개연성이 있는 것 같은데 왜 그런 장면이 떠올랐는지 모르겠다.어떤 정보 없이 멋대로 상상한 남의 엄마 자살 장면을 자꾸 시뮬레이팅 하게 되는 나 자신에 대한 거부감과 죄의식도 있는 것 같다.

어머니의 소식 그 뒤로는 엄마도 첼로 오빠의 소식을 모르는 것 같았다.
첼로 오빠 잘 살아. 그리고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