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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얘기 하지 맙시다

기억이 날아가기 전에 쓰는 촬영 현장 일기

지역 북쪽 경기도
2회 분량
역할: 조연출/조감독
나의 인생 전반에 걸친 데이터베이스가 작용했을 수 있음.

1. 아프리카 출신 남성과 여성

  • 남성은 세가지 타입으로 분류되었다.
  • 엄청 착함 / 능글 맞고 스킨십 하려고 함 / 오만함
  • 여성은 분류하기엔 남성에 비해 표본이 부족했지만 미디어에서 흔하게 보는 스테레오 타입이었다. (거친 자매들 느낌)
  • 엄청 착한 남성들은 한국에서 매우매우 오래 살고 처자식을 먹여살린 이력이 있고 스몰토크는 거의 안함
  • 착한 남성 중에서는 여성에게 무거운 걸 못들게 하지만 일하다가 마주쳤을 때 반가워하며 껴안았다 시부럴 허리도 터치하길래 그때부터 거리 두고 일만 존나 시킴.
  • 그랬더니 다음날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노쇼.
  • 오만한 남성은 부탁 한마디 없이 옆사람한테 일을 시킨다. 내가 슛 들어갈 때 가만히 서있는 것처럼 보였는지 자기 핸드폰이랑 이어폰을 자꾸 맡기고 자기가 연기하는 장면을 찍어달라고.. 당연하게 휴대폰 내민다. 이틀 다 콜타임에 늦었고 행동과 걸음이 매우 느리며 음료를 엎지르고 나한테 치우라고.. (조감독겸 스텝 나 한명인 상황) 어쩔 수 없이 치워도 미안하다 고맙다 부탁한다 이딴거 한마디도 못들어봤다
  • 여성은 심성이 고약한 한국 할머니들 같았다. 항상 기선제압을 시도하고 말도안되는 걸 요구함.
  • 예를 들어 프리프로덕션 중 감독이 본인들을 집에 데려다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하차함 -> 촬영 전날 한명만 합류하기로 함 -> 촬영 이틀차에 모두 오기로 함 -> 감독이 새벽에 의상 컨셉을 요구하였기 때문에 의상이 좀 안맞음 -> 다른 출연진이 입고 온 바지를 빌려서 입으라고 건네줌 -> 니는 지금 흑인 여성을 모욕했다고 면박당함
  • 우리같은 흑인 여성은 절대 다른 사람이 입던 옷을 입지 않는다. 그건 흑인 여성에 대한 모욕이다. 너는 우리를 모욕한거다. 난 이걸 입지 않을 거다. (막 화냄)
  • 근데 감독이 시켰는데 나보고 어떡하라고 ..
  • 그러더니 갑자기 자기꺼 있다고 옷을 꺼내는거임? 대체 그동안 왜 안갈아입고 뻐긴걸까
  • 대기하던 중 "DO YOU KNOW WHO I AM?" 너 내가 누군지 알아? 이런 말을 했는데 내가 멍청하게 "Gabriel...? The actor." 이딴식으로 대답하니까 기를 죽일 마음이 식어버린 듯하다.
  • 글고 눈마주치면 졸라 무서은데 힛~ 이렇게 웃으면 어이없어서 웃어주는듯 .. 무해함으로 살아남기 흑인 여성에게도 잘 먹히네요
  • 어쨌든 기타등등 무언가 요구하면 한국인 상식으로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많았으며 약간이라도 양보해야하는 상황이 오면 절대 물러서지 않는다. 어쩌다 양보하게 되면 사람 한 명 살린 듯한 생색을 낸다. 매사 기선제압을 시도하고 그거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 여성들은 문제해결을 시도하다가 홧병이 생기고만다.. 근데 무해함과 귀여움으로 살살 녹여주면 어쨌든 할거는 다 하고 감 그리고 택시비와 보나스를 요구함
  • 남성과 여성의 공통점 : 일이 끝나면 교통비를 요구함 (다그런건 아님 왜냐면 몇명은 끝났을 때 내가 그 자리에 있지 않아서 모름)


눈빛이 따뜻한 남성들이 있었다. 여성들이 화내듯이 말하는 거에 허허실실 웃으며 받아주더라고. 그리고 아프리카 여성들이 나의 기를 죽이려 할 때 나와 함께 웃어주며 분위기를 중화시켜주었음 + 스킨십 안함

2. 배우
생각해보니 남성 배우 표본은 1명이라 잘 모르겠고 여성 배우들은 대부분 현장의 모든 스텝의 이름을 물어보고 말을 걸고 대화를 한다 .. 뭔가 연기 톤이 아닌 일상 톤 말투나 목소리도 좀 비슷하고.
그런 감상을 말했더니 선배들한테 그렇게 배워서 그런 것 같다고 하더라. 굳이 그래야하나 싶긴 한데 연기할 때 분위기가 너무 낯설고 경직되어있는 것보다 그래도 통성명 정도는 하고 간단한 안부와 신상(어디서 왔는지 아침밥은 먹었는지) 등을 아는 사람들 틈에서 연기에 더 집중을 잘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3. 감독
----------- 삐 처리 되었습니다-------------
촬영이 끝나고 돌아올 때 쯤이면 성인 남성 살해 혐의로 입건되어있지 않을까 했는데 다행히 그러기 전에 피곤함으로 전투력을 상실함

4. 키스텝

  • 나의 상황을 잘 이해해 주셔서 감사하고 오히려 연륜이 있어서 가능했던 거 같다. 꼬박꼬박 조감독님이라고 불러주는 것도 신기했다
  • 감독이 오케이 컷을 너무 쉽게 내어주는게 오히려 촬감의 역량을 끌어내는데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 같았다. 이건 좀 얘기가 길어질 거 같은데.. 감독은 항상 주변에 엄청나게 많이 요구를 하는 사람이라고 느껴왔다. 이거 해줘 저거 하고싶어 이거 할 수 있지? 어떻게 해서라도 이대로 해줘 !!!! 이거 해야돼 !!!!! 할거야 !!!!!!! -> 프리 때는 한번씩 이러더니 정작 촬영장에서는 테이크 1에 바로 오케이된게 대부분이었다. 중요한 장면에서도 실수로 인한 NG가 아니면 걍 거의 다 오케이.. 촬감이 잘해서 그런건가 싶기도 한데 촬감이 오히려 한번 더 가보자고 하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넘어감. 그럴 때 내가 촬감이라면 좀 .. 내 자신이 처한 상황이 싫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독이 무리한 요구를 해와도 빡세고 힘들지만 어떻게해서든 해내는 이유는 결과물이 잘 나올 거라는 신뢰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시발 좆같지만 저새끼가 하라고 하는 거면 분명 이유가 있겠지 -> 해냄 -> 결과물 좋아 -> 오르가즘 -> 커리어에도 도움이 됨
  • 하지만 감독이 자꾸 "됐어 이정도면" 이렇게 말하면 내 역량도 이정도로만 보는 것 같고.. 좀.. 그래..
  • 그 외 키스텝은 나 제외 촬영보조 한 명 뿐이라 쓸게 없네


5. 외국인

  • 외국인들은 생각보다 프랑스어로 소통을 많이 하는 듯하다. 프랑스어로 소통이 될 정도의 비슷한 교육 수준을 받은거겠지?
  • 한국에서 조직생활을 했거나 프리랜서 등의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애티튜드가 한국인과 위화감이 없고 조직에서의 센스가 좋다. 자신이 항상 어디에 위치해야하는지를 신경쓰며 물건을 건네줄 때 상대방을 배려하여 정리해준다. 그런 사람들은 우리나라가 아니어도 있겠지만 어쨌든 이쪽이 소통하기 정말 편하고 고마웠다.


6. 현장에서 느낀 갖가지 것들

  • 화장실이 존나 매우 제일 중요하다.
  • 그 다음은 물과 간식이다. 물 많이 샀다고 한소리 들음
  • 그 다음은 잠깐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이다 (야외)
  • 식당 예약에서 주소와 가격은 네이버 맵과 상이할 수 있다. 예약시 정확한 주소와 가격을 물어보자.
  • 프로덕션 전에 제발 단체로 모아놓고 브리핑 한 번 제대러 꼼꼼하게 하자. 콘티 시발 아무도 안읽네 ㅠㅠ
  • 시간을 되돌린다면 더 준비를 잘 한다 vs 안한다 중 안한다에 가까운데, 어떤 분은 안좋은 걸 거르는 능력치를 획득했을 거라며 이득이라고 해주셨다 ..


7. 에피소드

  • 한 여성이 카메라 스텝에게 접근하더니 촬영에 대해 이것저것 물었다. 카메라 스텝이 방해받는 걸 막기 위해 달려가 서비스업 톤으로 "혹시 ~ 어떤 일 때문에 그러세요 ~!" 이렇게 질문하니 "전 지금 이 분한테 여쭤보고 있는데요, 당신이 뭔데 방해해요?" 라는 답변을 들었다 ....
  • 그 여성의 말은 다소 와해되어있어 100퍼센트 이해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용은 대략 이렇다:
    그녀는 감독의 지인인 남성과 몇 달간 교제하였는데 그 남성은 본인이 영적 지도자라서 그녀에게 구원을 줄 수 있다 하였고 여성은 남성에게 이런 저런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알고보니 유부남 엔딩.. 그리고 우리는 섹스한 적이 없다 라는 메세지를 보내온 것을 캡쳐한 것과 여러 사진들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 그런데 여기서 다른 여성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데 그 후로 ㄱ ㄱ, ㅅㅍㅎ, ㄴㄱㅍㅌ, ㅎㅁㅅㅅ 등의 자극적인 언어를 마구 쏟아내었다. 결론은 감독이 가해자 남성에게 어떤 도움을 주어 처벌을 피했다는 이야기.
  • 중반부터 음 신뢰도가 매우 낮은 이야기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여성이 자기 속이 뒤집어지고 숨이 막히고 어쩌고 깽판을 놓고 싶다고 하며 경찰까지 부른 마당이라 그냥 잠자코 욕받이를 자처했다. 그리고 사실 어쨌든 감독이 잘못한 건 없음 그런데 자극적인 언어와 감독의 이름이 뒤섞여 고성으로 전체방송이 되니까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오해할 법한 느낌이었다.
  • 나는 이렇게 남성과 얽혀 상처받고 제대로 해결되지 못한 후 자극적인 언어를 방언처럼 쏟아내는 여성을 자주 보았다 .. 정신이상자처럼 보이지만 사실 평소에는 감성이 예민한 타입인 것 같다. 남성을 절대적 가해자의 자리에 두고 그녀석이 존재하는 한 나는 앞으로도 제대로 살아갈 수 없다-는 느낌.
  • 그런데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는데 사실 눈에 비슷한 것만 띄어도 당장 달려가서 죽여버리고 싶긴 하다. 추하게 늙어서 주변에 사랑하는 사람 하나 없이 비참하게 천천히 죽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 ... 그치만 내가 그렇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찾아가서 담판을 지을만한게 남은 것도 아니고. 불쑥 불쑥 찾아오는 좆같음은 있지만 살면서 그정도도 넘길 줄 모르면 위의 여성과 같이 모르는 사람을 붙잡고 방언을 쏟아내게 되는 걸까? 여튼 시발 커버하느라 힘들었다는 게 결론.


8. 에피소드 (2)

  • 출연진 중 십대가 있었다. 누나 이거 해서 얼마 받아요? 이정도면 무조건 100 받겠다. 그쵸? 이러길래 저예산은 돈보다 이번 일이 다른 기회로 연결될 것을 기대하고 하는 것이다 .. 라고 말해주었다. 근데 요놈이 "그럴 확률은 몇 퍼센트나 돼요?"라는 것임. 쪼끄만게 핵심을 찌르네 ... 어버버버 하다 대화 끝. 차라리 진짜 100 받았으면 내가 감독한테 죄송했을 듯. 그렇다고 내가 다른 스텝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었느냐? 그냥 불쌍하다는 이미지만 심어준 듯하다..


9. 조감독/조연출이란 (내가 했던 일 위주로)

  • 감독 따까리/욕받이
  • 가끔 감독이 이게 더 낫냐 어떠냐 물어볼 때 의견 낼 수 있음 스케줄과 촬감 등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반영하느냐 감독 똥꼬를 빨아주느냐 내 주관을 내세우느냐 이정도의 선택지가 있다
  • 사전준비에 대한 모든 것 - 스케줄 조율과 안내, 그리고 현장 진행. 이 때문에 출연자와 스텝에 대한 컨트롤.
  • 딜레이가 발생하면 그걸 줄이려는 각종 노력과 행인 등 컨트롤 - 이 역시 현장 진행에 포함된다.
  • 일손 필요할 때 잡일하기
  • 스크립트 - 원랜 따로 스크립터가 있는데 사실 이번에는 스크립트까지 쓸 정도는 아니었다. 근데 그냥 함
  • 걍 .. 다 했어 다 .. 이거 저거 다 .... 스텝이라고는 감독/촬영팀/나 한명
  • 스텝들과 출연진들이 감독 욕하는거 욕받이, 달래주기.


중간 중간 생각날 때마다 한번씩 추가해야지 ..
일단 여기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