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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루루

(6)
하늘 살아오며 봤던 수없이 많은 하늘을 떠올리니 그 끝은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억번 피고 지던 구름들 그 사이를 가르던 빛들 정말 정말 정말 많은 아름다운 것들을 보며 여기까지 왔구나 내 일생의 하늘은 아름답고 아름다운 걸로 가득하구나 온 세상이 잠겨버렸구나
병리, 마니아, 그 뒤에서 병리, 마니아, 그 뒤에서 시인께선 왜 아직도 살아계세요? 왜 헤로인. 매독. 니코틴으로 죽지 않고 아직 살아서 밥대신 소주를 마시며 살아나셨어요? 일평생 해로운 것으로 몸을 가득 채우고 시집을 게워내셨는데 요절하지 않고 질기게도 나를 괴롭히세요? 당신을 먹고 자란 나도 곧 죽을 거 같은데 안죽어요. 넘치게 먹고 내장이 찢어져 디질 줄 알았는데 여전히 배쩍 꼻아있어요. 화풀이라고 생각하지만 당신이 만든 우주 속에서 나는 저주를 삼키고 아름답고 슬픈 말들로 대신하게 됐어요. 그래서 병들어 여관방에서 죽다 살아난 불쌍한 시인 당신 늙고 생생한 당신을 죽이고 싶어요 맘속으로 찌르고 또 내리치고 으깨버렸는데. 저의 사주 오행 속에 살인자의 그것이 있던가요? 별자리에는요? 신비한 세계와 이 우주 사이 공허 속에 ..
3. 야 난 간다 서로의 자리로 돌아가자는 성이 다른 두 가수의 듀엣에 내 눈에 물이 고이는건 최승자 시를 읽고 가슴이 아파 또다른 시를 쓰는 건 그새끼가 생각나서가 아니야 사랑이 일인분이라고 착각하도록 내버려둔 건 너와 헤어지기 위해서가 아니야 내 너른 바다에 빠져 니가 익사하기 전에 난 간다 비오는 노포집을 뒤로하고 야, 난 간다.
2. 그런 세상에 살지 않을래 그런 세상에 살지 않을래? 시가 가득하고 사랑이 넘치는 예쁜 단어들이 떠다니고 우린 그저 누워서 손만 뻗으면 되는 애달픈 노래는 흘러가버리고 적당히 바삭 마른 잔디 위에서 탁한 분홍빛 하늘 아래서 누구도 헤어지지 않을래? 멀리 떠나면 그런 바다가 있대, 세상 모든 이야기가 모여 썩어버린 파도가 칠 때마다 모래에 악취가 스며드는 그런 바다는 잊어버려도 되는 세상말이야 아무것도 아픈 시가 될 수 없고 무엇도 깨닫지 않는 아이들만 모여 추억을 낳지 않고 홀로 남아 떠올리는 사람 없는 세상 아름다운 말을 다 써버려 남은 것 없이 따뜻한 잊어버릴 바다 너머 그 세상으로 외롭게 가지 않을래?
소로를 밟고 선다 걷히지 않을 슬픔이 있다 상공엔 별이 있으나 길을 비추는 건 오로지 시리게 투명한 보석 뿐이다 더듬어 쫓는다 무엇을 눈으로 보기 위해서 비가 오고있는 게 아닐까 앞이 보이지 않는 이유는 허파를 불려 한숨을 마시고 기도를 죄어 사랑을 뱉는다 아무래도 이게 다인 것 같아 우리가 떠다니는 이 곳은 부딪쳐 되돌아온 닿지 않는 발 어디에도 그래서 매달았다 정처없이 유영하던 사랑을 곱게 갈아넣은 주머니를 길은 없다 무겁게 떠올라 작은 발을 붙인 곳 젖은 슬픔을 달라붙는 장막을 걷고 앞으로 나아간다.
0. 백지공포 .0 0과 1로만 이루어진 세상에서는 조금 더 나을 줄 알았는데 희게 보이는 게 텅 빈 종이가 아니라 무수한 빛이 일렁이는 어떤 장소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디지털 세대인 나는 종이에 쓰는 것보다 손으로 더듬고 두드려 쌓아 나가는 게 더 익숙하다고 여겼지 네가 떠나는 것이 분명하게 다가올 사실인 걸 외면하다 이제 나를 묶으려고 이곳으로 도망쳤고 너에게만 말하던 것을 삼켜 체하는 대신 아무 대답도 들을 수 없는 텅 빈 빛무리에서 헤매게 됐어 아직 거기 남아있다면 그가 내게 메아리 같은 말을 흘려줄수도 있겠지 나는 하고싶은 말이 너무 많고 익숙하지 않은 방법으로 사랑하는 걸 어려워해 너도 알고 있지 글을 쓰면 죽고 싶어져 아니 죽고 싶을 때만 글을 써 나는 네가 내 안에서 죽었길 바라며 글을 써 글자가 낱낱이 부서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