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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것

죽은 것의 활기

유령선
 
 
우린 다 죽었지
그런데 우리가 죽었다는 걸 아무도 모른다
우린 이미 죽었어요
말해도 모른다
매일 갑판을 쓸고 물청소를 하고
죽은 쥐들과 생선, 서로의 시체를 바다로 던져버리고
태양을 본다
태양은 매일 뜨지
태양은 죽지 않아
밤이면 우리가 죽었다는 것을
죽음 이후에도 먹고 자고 울 수 있으며
울어도 바뀌는 건 없으며
삶은 계속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검은 쌀과 검은 물과 검은 밤의 폭풍을 오래오래
이가 녹아 사라질 때까지 씹는다
침수와 참수와 잠수의 밤
 
언젠가 우린 같은 꿈을 꾸었지
아주 무서운 꿈이었는데
꿈에서 깬 우리는 모두 울고 있었다
 
아침이면 다시 태양 아래 가득 쌓여 있는
형체를 가늠하기 어려운 것들
 
풍랑을 일으킨 거센 비바람은
누군가의 주문이었다는데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우리의 출항은 순조로워 보였는데
날씨는 맑았고
우리가 당도할 항구의 날씨는 더 맑고 따뜻했는데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나와 너의 그의 그녀의 너희의 그들의 우리의
아주 무서운 꿈속에서
 
그곳에 당도하기를
우린 아직도 바라고 있구나
이제 우리 자신이 무서운 바다의 일부인 줄도 모르고
 
 
─강성은, 『Lo-fi』, 문학과지성사, 2018
 
-
 

참 재미있는 시야
난 아무리 읽어도 활기차게 읽힌단 말이지 
몇몇 부분들은 살아가는 존재에게 필요한 말들이라 그런 것 같기도 하고.  
(태양은 매일 뜨지/울어도 바뀌는 건 없으며)
캐리비언의 해적을 많이 봐서 그런가..
블랙펄의 선원들이 떠오르는데
아마 시인이 그거 보고 썼을 수도 있고 ??
같은 어구가 계속 반복돼서 생기는 리듬감으로 생동감이 전해지기도 하고비행기는 높아 높으면 백두산 이것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기도 하는게
무의식의 흐름이지만 의식이 아이처럼 또렷한 사람들의 특징처럼 느껴진다.
내가 이 시에서 기이한 활기가 느껴진다고 하니까
선생님이 그 지점을 글로 잘 써보라고 하셨는데
거기서 캐리비안의 해적에서 어쩌구 할 수가 없어서ㅠ

시에서 자주 쓰이는 ‘죽음’을 ’삶‘으로 바꿔보자

우린 다 살았지
그런데 우리가 살았다는 걸 아무도 모른다
우린 이미 살았어요
말해도 모른다
매일 갑판을 쓸고 물청소를 하고
살아있는 쥐들과 생선, 서로의 몸을 바다로 던져버리고
태양을 본다
태양은 매일 뜨지
태양은 살지 않아
밤이면 우리가 살았다는 것을
이후에도 먹고 자고 울 수 있으며
울어도 바뀌는 건 없으며
죽음은 계속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검은 쌀과 검은 물과 검은 밤의 폭풍을 오래오래
이가 단단히 자라날 때까지 씹는다
침수와 참수와 잠수의 밤
 
언젠가 우린 같은 꿈을 꾸었지
아주 무서운 꿈이었는데
꿈에서 깬 우리는 모두 울고 있었다
 
아침이면 다시 태양 아래 가득 쌓여 있는
형체를 가늠하기 어려운 것들
 
풍랑을 일으킨 거센 비바람은
누군가의 주문이었다는데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우리의 출항은 순조로워 보였는데
날씨는 맑았고
우리가 당도할 항구의 날씨는 더 맑고 따뜻했는데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나와 너의 그의 그녀의 너희의 그들의 우리의
아주 무서운 꿈속에서
 
그곳에 당도하기를
우린 아직도 바라고 있구나
이제 우리 자신이 무서운 바다의 일부인 줄도 모르고

-
단어 몇 개의 의미를 전복시켜봤더니
좀 더 알기 쉬운 느낌이 된 것도 같고
이전에 느꼈던 활기가 없고 축축 쳐진다..
내가 죽었다는 걸 아무도 모르는 것보다
내가 살았다는 걸 아무도 모르는게 비교도 안되게 절망스럽고 고독해
수업 코멘트 중에
유령이란 건 자기가 죽었다는 사실을 주변에서는 전부 알고있는데 자기 자신만 모르는 상태라는 코멘트가 있었다
그런데 이 시에서는 자기가 죽었다는 사실을 자기만 알고있다는게 되게 단순한 전복이면서 강하게 그 사람이 살아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 같음.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한탄하는 것도 뭔가 무섭고 처절하기보단
좀 웅성웅성대는 느낌으로 약간의 귀여움도 느껴진다
내 개인적인 감상일 뿐

그치만 마지막 연이랑 마지막 행이 찢었다
앞에 해석이 어찌되었든
마지막 연으로인해 바다 그자체가 되었음
바다가 가진 혼돈 평온 어두움 활기참 등등
물런 바다가 엄청난 치트키이긴 하다
바다 파도 해질녘 여름 끝무렵 등등
쓰고 보니 헤어질 결심이네 ㅋㅋ
어느정도 궤도에 오른 사람이 저런 치트키를 쓰는 거 분야를 막론하고 극혐이긴 하지만
이 시에서는 오히려 좋았다.
바다가 가지는 일반적인 특징을 그대로 갖다 쓴게 아니라
명확한 상황을 그려내면서 이중적인 분위기를 만들어서 그런가?? 중간에 꿈을 꾸는 주체와 상황이 어느쪽인지 모호한 지점에서 갑자기 후욱 내 얘기로서 나한테 들어온 느낌인데..
좀더 생각해봐야할듯

마지막 행은 불호라는 다른 수강생의 코멘트도 있었다.
아마 내가 좋다고 느낀 이유랑 똑같아서 싫을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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