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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일기

시각장애인

밤 11시 쯤 집에 가는데
완전 골목은 아니고 큰길도 아닌?
차도는 두개정도로 작은 차도고
마을버스도 다닐 정도로 차가 그래도 좀 다니는 길이었다.
내 앞으로 사람 두 명이 차도 한복판으로 걸어가고 있었고 차들이 속도를 줄이고 가까스로 피해 지나가는 상황이었다.
자세히 보니 스틱을 두들기며 가고 있었고 두 명 다 시각장애인이었다.
지금 차도로 걷고 계세요
라고 했더니
아 여기가 골목길이 아닌가요? 라고 하셨다
여기 공원 옆 차도이니 내 쪽으로 오시라고 했더니 아 그럼 저쪽 인도로 갈게요 하면서 반대쪽으로 감
근디 거기엔 또 펜스가 쳐져있어서 갈 수가 없었음
그래서 사실을 알려주고 이쪽으로 오셔서 건너시라고 했다
나는 이쪽이 초행길이신 줄 알고 좀 더 자세히 설명을 드리려고 했는데 여기 오래 사셨고 자주 산책 다니는 길이라고 하셨음.
그 얘기 듣고 너무 충격을 받았다.
자주 다니던 산책길에서 차도로 걸으며 그 사실조차 모르다니
게다가 한밤중이라 잘못 가고있다고 정정해 줄 사람도 주변에 없었다. 물론 몰랐으면 그대로 끝까지 갔어도 별 생각 없을 수 있겠지만..
내가 다니던 인도에 있는 점자 블럭을 다시 봤는데 상당히 띄엄띄엄 있어서 골목에서 나왔을 때 몰랐을 차도로 가게된 걸 몰랐을 수 있겠다 싶기도 하면서
아니 그래도 맨날 다니는 길인데 ...... 나한테 어느 날 시각에 문제가 생긴다면 참 적응해서 살아가기 어렵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들을 멋대로 판단할 건 아니지만
익숙한 삶 속에서도 나도 모르게 위험한 길을 걸을 수 있다는 사실이 넘 무서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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