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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일기

죽음과 새

23 09 12 화요일

아파트 단지 안에 초딩들이 모여서 새를 건드리고 있었다.

그냥 지나가려고 하다가 한 초딩이 새를 들어올리면서 데려가야지~ 라고 하는 걸 듣고 선회하였다.

새는 애들이 어떻게 건드려도 꼼짝 않았고 뇌진탕인지 뭔지 이마가 빨갰다.

초딩들에게 박스를 구해오라 시키니 새가 박스 위에만 앉아있으려고 했다. 

 

초딩들이 호시탐탐 노리길래 아예 데리고 테이블에 올려뒀지만 나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해야할지 나도 몰라서.. 내가 마시던 달달한 제로 음료수를 주니까 또 꿀떡꿀떡 잘 마시기도 해서 놔줘야 하나 싶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얘가

 

이렇게 걸어나오더니 과자봉지 위에 쪼그려 앉아있다가

모서리에 가서 서더니 그대로 바닥으로 추락했다.

날개를 펼치지도 않아서 날려다가 실패한 건진 모르겠지만 적어도 떨어질 걸 예상한 건 아닌 것 같았다.

그렇게 떨어진 채로 몇 발자국 걸어가더니 그냥 훤히 노출된 상태 그대로 쪼그려 앉았다.

 

저렇게 한참을 앉아있으니 동네 고양이가 갑자기 새를 덮쳤다.

내가 너무 놀라서 소리를 지르니까 고양이가 저렇게 다 보이는 데에 앉아서 계속 노리더라.

내가 계속 못하게 하니까 나중엔 엄청 찡찡댔는데 그 소리가 마치 참치캔을 따놓고 주지는 않고 놀릴때 우리 고양이의 반응과 비슷했음 ..

고양이가 덮칠 때도 저 새는 저항 한 번 하지 않았다. 날개를 푸드덕 거리지도 않았고.

이대로 두면 결국 고양이 밥이 되거나 초딩들의 실험체로 전락할 것 같아서 결국 집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새의 얼굴과 다리에 울룩불룩 큰 종양이 난 건 '계두 바이러스'라는 조류 천연두일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혹시 다른 병균이 있을지 모르니 안방 실외기용 베란다에 격리했다.

꿀물을 타서 주니 또 잘 마시긴 했다. 한 번 마실 때 쭉 마시고 두 번은 안마시길래 30분~1시간에 한번씩 찾아가 물을 급여했다. 계란 노른자도 섞어주니 투명한 물만 싸다가 초록색과 흰색 똥오줌을 싸기 시작했다. 

 

이튿날 아침은 전날보다 컨디션이 괜찮아 보였다. 전날까진 물 마시기 싫어도 부리를 벌리지 않거나 고개를 돌릴 뿐 움직임은 없었는데 그보다는 몸을 움직여 피하기도 하고 좀 걷기도 했다. 

야생조류보호협회에 전화해보니 계두바이러스가 의심되는데 전염성이 매우 강한 바이러스라 입소하게 된다면 즉시 안락사라고 했다.  계두바이러스는 50퍼센트의 확률로 생존하기도 하고 치료 방법은 딱히 없다고 한다. 야생에 놓아주면 자연치유 되기도 하니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곳에 놓아주라고 한다.

그런데 움직임이 없는데 어떻게 자연치유가 되겠어.. 그리고 수요일은 비도 많이 와서 우선은 하루 더 데리고 있으면서 뭘 좀 먹기 시작하면 그때 내보내려고 했다. 

협회 측은 어떤 다른 바이러스나 질병, 기생충 등이 있을지 모르니 빨리 내보내라고 했는데 지금 내보내면 죽을 게 뻔한 데 '혹시 살 수도 있잖아'하고 내보낼 수가 없었다. 

 

이 날 오후엔 계란꿀물을 잘 먹지 않았다.

 

그 다음날인 목요일 아침부터 뭘 먹길 거부했다. 오후에도 마찬가지.

그런데 거부가 좀 적극적인 거부여서 오히려 기운을 좀 차려가는 것 같기까지 했다.

다음날 아침이나 주말에 숲에 한 번 데리고 나가보고 날아가면 그대로 바이바이, 꼼짝 않으면 다시 데려오기로 했다.

 

09 15 금요일

새가 죽었다.

제대로 확인한 건 아니지만 뒤집어져있었다. 새는 죽으면 무게중심이 뒤로 쏠리나. 왜 뒤집어지지. 물고기도 배를 위로 향하게 하고 죽던데 물고기는 부레 때문이면 새도 부레와 비슷한 공기주머니 같은 것이 배에 있는 걸까

 

실외기 베란다 문을 여는 순간부터 냄새가 심해진 것을 느꼈다.

분명 전날 저녁에 박스를 새걸로 갈아줘서 냄새가 그렇게 심하지 않았는데.

내가 박스 뚜껑을 열어서 발견했나? 아니면 살짝 열려있었나? 목 위로는 박스 날개에 가려져 보지 못했다.

나는 뒤집어진 새를 발견하고 문을 닫고 아빠에게 전화해 새가 죽었다고 알렸다.

데리고 나가서 묻어주라고 했는데 출근해야한다고 하자 아빠가 퇴근하고 묻어준다고 한다.

 

출근 안했어도 나는 묻어주지 못했을 것 같다. 

 

새의 정수리도 울퉁불퉁 했었는데 바이러스 병변은 두피에도 염증이 생기고 딱딱하게 갑피가 된다고 한다. 

온몸에 생기는 병변은 매우 딱딱해서 외과적 수술이 아니면 제거가 안된다.

내부 식도나 부리 안 쪽 점막에 병변이 생기는 경우 식사를 할 수도 없다. 

이 바이러스에 대해 검색해보면서 너무 끔찍한 병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고통도 고통이지만 증상 중에 '무기력증, 우울증, 침울함' 등이 있다는 것

부리와 콧구멍을 막을 정도로 자라나고 머리통을 뒤덮을 정도로 큰 병변

이 죽은 멧비둘기는 이미 가능한 모든 부위에 병변이 퍼진 상태였다.

기운이 없었으면 죽을 걸 예상했겠지만 

기운이 오히려 더 있어보였는데 죽은 것이 매우 혼란스럽다. 

 

새를 데려온 첫 날, 늦은 저녁으로 보쌈고기 남은 걸 데워 먹었다.

질기기도 하고 쫀득한 고기를 씹으면서 자꾸 베란다의 멧비둘기가 생각났다.

입속에서 느껴지는 감각이 그 비둘기의 병변이 연상됐고 굉장히 꺼림칙했다.

아픈 개체를 보며 꺼림칙한 기분을 느낀다는 사실 자체에도 꺼림칙함을 느꼈다.

불쌍하면서 가까이 가고 싶지 않았다. 

내가 하루 더 일찍 놔줬으면 혹시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도 든다.

그냥 구조 다음날 잘 먹을 때 놔줬으면?

죽긴 죽었어도 나는 그 사실을 모르고 어디 잘 살아있겠거니 했을까?

아니면 내가 놔줘서 죽었을 까봐 매일 떠오르고 결국 놔준 자리에 되돌아가 죽은 흔적이 있는지 살펴봤을까?

흔적이 없어도 날아갔겠지가 아니라 고양이가 먹은 건지 아닌지 몰라서 불안했을까?

데리고 들어온 지금도, 놔줬더라면 하는 가정도 어느 쪽도 내가 만족을 얻지는 못했을 것이 확실하다.

그러니까 내가 이 새가 불쌍해서 되돌아가서 조우한 그 순간 부터 어느 선택을 했어도 마찬가지였을 것 같다. 

 

초등학생인가 중학생 즈음 

엄마랑 동생이 놀이공원 갔다가 좌판에서 새를 두마리 사왔다. 

관상용은 아니었고 그 동네에 흔한 작은 새였는데 엄마는 그냥 날려보내주자고 했지만

한 녀석이 기운이 없어보여 내가 우겨서 그 다음날 동물병원에 데려가기로 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 내가 새를 꺼내 손에 올려놨는데 손에 토를 한 번 하더니 그대로 죽었다.

나는 오열했던 것 같다.

이렇게 작은 새가 죽었는데도 이렇게 슬프고 힘든데 더 큰 동물이나 사람이 죽으면 그건 얼마나 힘들어? 

라고 말했던 것도 기억이 나긴 한다. 

이 너머의 슬픔이 있다고? 

 

나머지 한 마리는 풀어주었다. 

새는 너무 잘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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