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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일기

헤테로 연애

헤남의 가장 유치한 욕망은 헤녀에게 1등이 되고 싶다는 것이고
헤녀의 가장 유치한 욕망은 헤남에게 유일한 여자가 되고싶다는 것인 듯

남자한텐 니가 최고라고 하면 제일 좋아하고 (혹은 처음이라고 하면)
여자한텐 너밖에 없다, 특별하다고 하면 제일 좋아한다

남자는 여자에게 있어서 최고의 종이 되길 바라고
여자는 남자에게 있어서 자신이 신이 되길 바란다

실패했을 경우 전자는 살인마가 되고
후자는 자살함

남자는 사실 잘 모르고 여자에 대해서 얘기하자먄
특별하지 않은 자기 자신을 견디지 못하고 공황장애 OR 양극성정동장애에 걸렸다가 남녀관계에 돈문제+배신 당하면 죽어버리는 수순

공황장애는 주로 자기 얘기를 잘 안하는 쪽이 걸리는 거 같고 양극성정동장애는 자기 입으로 자기 얘기를 지나치게 자주 하는 쪽이 걸리는 듯
특별하지 않은 자아상을 포장하기 위해 자신을 성찰하는 것보다 본인이 그려놓은 허상을 자꾸 부풀리고 매우 확신에 찬 상태로 그것을 주장함
그리고 홀로 남았을 때 자신이 주장했던 것과 다른 현실을 마주하면 극도로 우울해짐

나는 인간을 믿고 싶어, 사랑하고 싶어, 나는 순수해, 걘 나만 견딜 수 있어, 지금까지 걔한테 이런 여자는 없었을 걸, 앞으로 걔가 나 없이 못 살도록 만들거야, 나만큼 특별한 여자는 없어, ••••

텍스트로만 봐도 토나오는 워딩을 내가 가장 사랑하는 친구가 줄줄 읊는 꼴을 보고 있자니 너무 속상하고 종국에는 마음이 미어져서 ‘넌 나에게 정말 특별하고 소중한 친구아’라고 말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친구는 사람이 불안하면 말이 많아진다거나 남자의 말투가 지나치게 다정할 수록 경계해야한다거나 하남자에게는 눈길조차 주면 안된다는, 인간에 대한 일상적인 수준의 이해도도 없는 것 같다. 그러면서 인류를 믿고 사랑하고 싶다니.. 물론 현 상태가 아직 못 믿는 상태라서 그러고 싶다는 거라고 하긴 했지만.
사랑하려면 대상에 대한 이해가 필수라고 생각하는데 그녀가 주장하는 사랑에는 온통 자기 얘기 뿐, 그 남자의 존재는 어디에도 없다
난 그 남자애가 나쁜놈인 줄 알았는데 더 큰 문제는 여자 쪽이었음.
나는 유일무이한 특별함을 가진 사람이 되고싶다는 욕망은 누구나 한 번 쯤은 가질 수 있지만 그것만이 자기의 존재 이유라고까지 말하면 솔직히 이 친구를 아끼게 되기 전에 알았다면 멀리했을 거 같다고 생각.
자아가 빈약한 사람들은 (특히 창작욕구가 있음에도 주변과의 비교로 포기해버린 경우) 스스로 예술 작품 혹은 예술 작품의 주인공이 되려하는 경향이 있다. 사소한 것에 과대한 의미를 부여하고 비물질적인 걸 목표로 삼아서 스스로 인생을 복잡하게 만듦.

그 남자를 너 없이 못살게 ‘어떻게’ 만들거냐고 하니까 그냥 옆에 있으면 된다고 한다. 그래서 그냥 옆에 있는게 어떤건지 묻자 떠나지 않는 거라고 함.
사실상 같은 말을 반복한거라 다시 구체적으로 잠수 탔을 때 정말 찾아가서 물리적으로 옆에 있는 건지, 계속 카톡을 보내는 건지 등을 물었더니 그런 건 생각 안해봤다고.
지속가능한 관계를 만들고자 하는 거 아니냐 했더니
그냥 사랑은 불같은거고 내일 다시 안 볼 거라도 오늘 최선을 다하는 거라고 한다 . 그러면서 차일까봐 연락 왜 없냐고 말도 못했냐?
정신병은 다른 게 문제가 아니고 자기가 하는 말과 행동이 다를 때 찾아오는 거다.

특별함은 자신만의 세계에서 나오는데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는게 불가능한 사람들이 있는 듯. 왜 불가능한지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을 해봐야겠지만 보통 이런 케이스는 아무리 인풋을 많이 넣고 사색을 많이 하고 글을 써도 타인의 것을 베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그걸 자기 생각이라고 착각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자기 세계가 분명한 사람이 있고 지랄병을 떨어도 자아상이 흐릿한 사람의 차이가 뭘까?
지금으로서는 유년 시절의 차이 정도가 떠오른다.
인정욕구가 강한데 인정해주는 사람이 별로 없었던 경우, 거기에다 스스로 인정하는 방법도 모르면 더욱 그런 거 같기도 하고. 그렇다고 해서 불안정한 유년시절을 겪은 사람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고.. + 주변에 창작자가 많은 경우 + 현실에 존재하기 어려운 비상식적인 존재나 관계, 성취를 꿈 꿈 등등
몇가지 조건을 충족하면 내면을 채우는 시스템 자체가 없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

여튼 너무 속상하고 위험한 수준이 된 것 같아서 그 친구 앞에서 꺼낼 수 없는 생각들을 좀 정리했다.
자해 경력도 있는 친구라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집 가는 길에 내가 입장 고려 안하고 내 말만 해서 미안하고 앞으로도 무슨 일 있으면 꼭 말해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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